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이브러햄 링컨 (문단 편집) === 분열된 국가를 통합하고 영웅이 되다 === || [[파일:external/www.old-picture.com/lincoln-antietam.jpg|width=100%]] || || 1862.10.03. 왼쪽부터 [[핑커톤 전미탐정사무소|앨런 핑커톤]][* Allan Pinkerton, 1819.08.25.~1884.07.01. 링컨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링컨을 경호하는 일을 하였으며, 링컨이 당선된 후에는 탐정사무소를 차려 군대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스파이 역할을 하였다], 에이브러햄 링컨[* 자세히 보면 사진찍을 때 움직여서 얼굴이 잘 나오지 않았다. 저 193cm의 큰 키에 브룩스 브라더스 수트와 실크햇이라는 링컨을 상징하는 복장으로 대부분의 전장을 시찰했고, 1864년 남군의 기습으로 워싱턴 D.C.가 공격당할 위협을 맞는 가운데에서도 전선에 직접나가 남군 저격수들의 위협 속에서도 D.C.의 방어군을 지휘하는 결기를 보였다. ], 존 알렉산더 매클러넌드.[* John Alexander McClernand, 1812.05.30.~1900.09.20. 일리노이의 법률가이자 정치인으로, 링컨의 정적이었다가 친구가 되었다. 링컨과의 친분으로 [[율리시스 S. 그랜트]]의 테네시군 휘하 군단장으로 복무했지만 그랜트와의 불화로 해임되었다. 전후 연방하원의원, 판사 등을 지냈다.] || 취임식 때부터 순탄치 않았는데,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의 자택에서 워싱턴DC로 향하는 링컨 대통령을 암살하겠다는 음모가 발각되는 사태와 워싱턴DC까지 직행열차가 없었던 시절 암살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링컨 대통령은 여러 번 여행 일정을 바꿔야 했다. 당시 노예제를 시행했던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열차를 갈아타는 시간은 일부러 새벽 3시 30분에 맞췄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였다. 새벽 시간에 워싱턴DC에 도착한 링컨 대통령에 대해 당시 일부 신문은 "밤도둑처럼 수도에 들어왔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남부는 강경하게 노예제를 반대해 온 정치인이 대통령이 된 것에 대해서 심하게 반발하여 당선 직후 연방 탈퇴를 선언하고 [[제퍼슨 데이비스]]를 [[아메리카 연합국]]의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하지만 링컨이 '''"어느 주도 미연방에서 탈퇴하지 못한다"'''라고 선언함으로써 그의 취임 1달 만에 [[남북전쟁]]이 발발한다. 전쟁 중이던 1864년 어렵사리 재선에 성공하였다. 결국 1865년에 남북전쟁은 남부의 항복으로 끝났지만, 종전 11일 후 그는 극장에서 극렬한 남부 지지자였던 배우 [[링컨 대통령 암살사건|존 윌크스 부스에게 암살]]된다. 이때 주치의가 상처에 '''[[미라]] 가루'''를 뿌렸다는 기록과 총알 꺼낸다고 [[눈(신체)|눈]]을 쑤셨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한편 부스 추적과 일당 재판에 대해서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전해오는데, 역시 대통령 암살이라는 사건이라서 그럴 것이다. 한편, 링컨은 지금도 미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 한명인데, 그의 일생이 영웅적이고 인도주의적인 행보와 거룩한 희생으로 끝맺어졌다는 점과 함께 한 나라로서의 아메리카 연방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링컨 이전의 미국은 어디까지나 각 주(州)의 연합체였을 뿐 한 나라라는 의식은 희박했다. [[조지 워싱턴]]이 물려준 미국이 주끼리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해체할 수 있는 연맹이었다면, 링컨이 물려준 미국은 하나의 나라이자 운명을 같이하는, 그야말로 진정한 '미'''합'''중국 The United States'였던 것이다. 그때까지 "The United States are~"라고 복수형으로 표현해서 주들의 연합체로 표현하던 합중국을 링컨 이후에는 "The United States is~"라고 단수형으로 표현해 하나의 국가라고 표현하게 되었다. [[링컨 기념관]]에 새겨진 헌사가 '이 성전에는 미합중국 국민들의 마음을 담아 미국을 구원한 에이브러햄 링컨에 대한 기억들이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국가통합과 함께 노예제를 완전히 몰아낸 업적은 미국이 지금까지도 그토록 부르짖는 해방, 자유 등 미국인들이 말하는 미국의 근본적인 정신과 맥이 닿아 있기에 그것을 지키고 실천해서 더 나은 국가로 만들어낸 링컨이 영웅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미국이 만들어낸 링컨의 영상들의 끝맺음은 국가통합과 더불어 '''그 어떤 위기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더 나은 국가, 숭고한 가치를 추구해 갈 것'''이라는, 미국이 계속해서 곱씹을 신화를 만들어냈다는 언급이 들어가고는 한다. [[ https://youtu.be/sV6uuMAnJUE|대충 21분 40초경부터 보면 남북전쟁과 링컨이 미국인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링컨은 역대 미국 대통령 인기조사 시 정당과 정치성향을 막론하고 늘 Top 5 안에는 들어가는 경우가 많으며,[* 나머지는 [[조지 워싱턴]], [[프랭클린 D. 루스벨트]], [[토머스 제퍼슨]] 정도가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미국을 확실하게 통합시켰다는 점에서 고평가받는 대통령으로 손꼽히고 있다. 덕분인지 반사효과로 그의 전임자 [[제임스 뷰캐넌]]과 후임자 [[앤드루 존슨]]은 인기조사 최하위를 두고 경합을 벌이는 수준이고, 전전임자인 [[프랭클린 피어스]], 전전전임자인 [[밀러드 필모어]]도 낮은 편이다. 후후임자인 [[율리시스 S. 그랜트]]도 1913년부터 50[[미국 달러|달러]] 지폐의 모델이었으나 꽤나 오랫동안 하위권이었다. 최근에는 아버지 부시와 함께 중위권 라인을 형성하는 중.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